카마그라구입 [책과 삶]딸 잃은 엄마는 왜 직접 ‘마약 카르텔’을 쫓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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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암 로드리게스(1960~2017)는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멕시코 동부 타마울리파스주의 작은 농업 도시 산페르난도에서 자랐다. 세 살 많은 건장한 남자 루이스 살리나스와 10대 후반에 결혼했다. 대학에는 가지 못했지만 농무부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1977년 딸 아잘리아를, 1982년에는 아들 루이스 엑토르를 낳았다. 농무부 공무원을 그만둔 다음해인 1992년 태어난 막내딸 카렌은 가족의 마스코트였다.
미리암은 2000년대 중반 체중이 150킬로그램까지 불어났지만 위 우회 수술을 통해 90킬로그램을 감량하고 자신감을 회복했다. 남편과 함께 운영하던 가게도 잘 돌아갔다. 남편의 고질적인 외도와 그 반작용으로 엇나가기 시작한 카렌을 제외하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삶이었다. 2014년 1월24일 카렌이 마약 카르텔 조직원들에게 납치되기 전까지는.
뉴욕타임스 멕시코 특파원을 지낸 아잠 아흐메드가 4년 동안의 취재를 바탕으로 쓴 <두려움이란 말 따위>는 딸의 납치범들을 추적하는 엄마의 분투를 담은 책이다. “죽을 각오로 모든 관련자들을 끝까지 추적”한 미리암의 용기 있는 행동은 마약 카르텔에 의해 붕괴된 멕시코 지역 사회의 참상과 멕시코 정부의 무능력이라는 배경 위에서 더욱 도드라지게 빛난다. 책은 저자의 치밀한 스토리텔링에 힘입어 마지막 페이지까지 단단한 흡인력을 유지하면서, 10만명이 넘는 멕시코의 악명 높은 실종자 문제가 얼마나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인지를 생생하게 드러낸다.
‘실종자 10만명’ 악명 높은 멕시코딸 납치범 추적 분투 담은 논픽션범죄 조직·권력 결탁 사회의 비극피해자가 미온적 경찰을 대신해증거 찾아내고 관청 압박해 조사연루범들 찾아 수감·사살했지만결국 탈옥 조직원들에 총살당해
원래 타마울리파스주를 지배하고 있던 건 ‘걸프 카르텔’로 알려진 범죄 조직이었다. 미국 금주법 시대인 1920년대 미국으로의 주류 밀수로 시작한 걸프 카르텔은 1980년대에 접어들어 마약 밀수로 세력을 크게 키웠다. 1998년 걸프 카르텔이 경쟁 조직들을 제압하기 위해 육군 특수부대 출신들을 영입해 준군사 조직 세타스를 창설하면서 마약 카르텔들의 폭력성은 변곡점을 맞았다. 세타스는 인질을 산 채로 불태우거나 절단한 사체를 거리에 전시하는 등 차원이 다른 잔혹성으로 악명을 떨쳤다.
이후 독자 세력화를 추진한 세타스가 2007~2010년 사이 걸프 카르텔과 ‘전쟁’을 벌이면서 마약 밀매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반 주민들도 위험에 노출됐다. “무고한 사람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폐기처분됐다. 2010년에는 세타스가 산페르난도를 사실상 ‘점령’하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해 8월 미국 밀입국을 위해 트럭을 타고 가던 72명이 세타스 조직원들에게 살해됐다. 걸프 카르텔과 세타스가 분열한 다음해였던 2011년 멕시코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은 2만8000건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세타스의 온갖 악행 중 가장 악질적인 건 마약 밀수와 함께 ‘지역 주민 납치’를 조직의 자금줄로 삼았다는 점이다. 걸프 카르텔과 싸우면서 활동 자금이 부족해진 세타스는 부유한 사람만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도 표적으로 삼았다. “세타스 입장에선 지역 주민 대상의 납치와 약탈은 마약 밀수와 무관하면서도 안정적인 수입원이었다. 곧 다른 조직들도 이와 같은 범죄를 벌이기 시작했다.”
선거 승리를 위해서라면 범죄 조직과도 손을 잡았던 멕시코 역대 정권은 마약 카르텔 단속에 미온적이었다. “계속 돈줄을 쥘 수만 있다면 정부에서는 밀수업자들을 내버려뒀고, 필요하다면 보호해 주기까지 했다.” 세타스가 장악한 지역의 정치인과 경찰은 “뇌물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총알 세례를 받을 것인지” 선택해야 했다.
미리암은 2년 동안 혼자 힘으로 증거를 축적하고 관청과 경찰을 압박해 조사에 나서게 만들었다. 용의자들의 명단을 작성하고 일거수일투족을 추적하면서 그는 경찰보다 지역 범죄 조직의 동향과 사정을 잘 꿰뚫게 됐다. 연방경찰이 미리암에게 수사 협조를 요청할 정도였다. 세타스는 공포로 사람들을 지배하려 했지만 타고난 담력과 집요함, 딸을 잃은 슬픔과 분노로 무장한 미리암에게 “두려움은 한낱 단어일 뿐”이었다. 결국 카렌 납치에 연루된 범인 4명은 교도소에 수감됐고 6명은 멕시코 해병대의 총에 사살됐다.
미리암은 2016년 2월 카렌의 유해 일부를 수습해 산페르난도 공동묘지 근처 사이프러스 숲 뒤편에 묻었다. 정의를 추구하는 미리암의 행보는 다른 피해자들과의 연대로 확장됐다. 멕시코는 피해자 권리 보장을 위한 법률을 갖추고 있었지만, 정부의 실행 의지가 부족하고 당사자들조차 법률의 존재를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미리암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실종 피해자 가족들이 정부를 압박해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할리우드 영화 같은 이야기지만 미리암의 이야기에 ‘해피엔딩’은 없다. 2017년 3월22일 타마울리파스주 시우다드 빅토리아 교도소에서 수감자 29명이 탈옥했다. 이 교도소에는 카렌 납치·살해에 가담한 세타스 조직원들이 다수 수감돼 있었다. 미리암의 정보원은 교도소에서 세타스 조직원들이 ‘보복’을 결정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미리암은 정부에 신변보호를 요청했지만, 하루에 한 번 집 주변을 순찰하는 게 전부였다.
2017년 5월9일, 밤늦게 퇴근한 미리암은 10시30분쯤 집 앞에 도착했다. 차에서 나오는 미리암을 향해 권총을 든 남자 2명이 다가갔다. 미리암은 총 8발의 총알을 맞았다. 미리암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을 거뒀다. 그날은 멕시코의 ‘어머니의날’이었다.
원서는 2023년 미국에서 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저자는 올해 5월 아프가니스탄 관련 보도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지난 한 주 우리는 두 가지 풍경을 마주했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의 20대 직원이 과로로 목숨을 잃은 사건과 쿠팡 등 e커머스나 택배 물류회사의 ‘심야시간 새벽배송 제한’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다. 전자는 한동안 잊고 있었던 서비스사회화 시대의 유연한 고용과 노동환경 모습이다. 후자는 플랫폼노동이라는 제도 밖 사각지대의 경계가 모호한 노동문제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사건처럼 보인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서비스경제에서 플랫폼경제로 산업구조가 변화한 데 따른 노동시장 현실을 보여준다. 자본주의 확장 과정에서 은폐된 노동의 단면일 뿐이다.
이 두 사건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노동은 존재하지만 그 노동을 하는 이들의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문제의 본질을 포착해야 한다. 지난 한 주 ‘런베뮤’의 비즈니스 모델을 파헤친 기사보다는 휘발성 기사들이 적지 않았다. 비표준적 계약과 파편화된 고용 형태보다는 자극적인 소재들을 주로 다루었다. 왜 홀 서비스와 베이커 업무 직원의 96.8%가 단기계약직 청년이었을까. 매년 영업점 확장과 비례해 산재 신청 승인 숫자가 증가한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과거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불법파견 때 우리는 유사한 경험을 한 바 있다. 제조업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라는 질문을 뒤로하고 객관적 사실관계를 살펴보며 해법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론과 시민들의 태도는 다르다. 인터넷 커뮤니티는 물론 다수의 기사들은 민낯을 보여준다. “새벽배송이 사라지면 일어날 일들” “2000만 소비자 볼모 잡혔다”와 같은 원색적인 제목들이 즐비하다. 불과 몇개월 전만 하더라도 “새벽배송, 노동자를 말려 죽인다” “새벽배송 노동자, 극단적 선택 3배 더 많이 생각”이라는 기사를 접했다. 노동자 죽음을 다루던 언론들이 이제는 소비자 편리성과 생태계를 앞세워 ‘볼모’라는 표현까지 쓴다. 몇개월 사이 세상이 변한 것인가.
‘쿠팡’이나 ‘배달의민족’ 같은 플랫폼 기업이 산재 사망사고 1위를 다툰다. 올해 상반기 기준 산재 사망사고 상위 10개 기업 가운데 플랫폼 기업은 절반을 차지하며, 전체 2490명의 68%(1694명)나 된다. 더는 노동자 건강과 삶을 파괴하는 일자리를 방치할 수 없다. 빠른 배송과 저렴한 가격이라는 편리함 뒤에 누군가의 생명이 대가로 지불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물론 반론도 있다. 불가피하게 야간에 일해야 할 직업도 존재한다. 병원, 항공, 보안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곳은 근무일과 시간, 업무량 등을 고려한 운영과 인력 배치가 이루어졌다.
정형화된 일자리는 해야 할 일과 시간이 정해져 있어 일과 삶의 경계가 분명하다. 그러나 플랫폼 노동자와 프리랜서는 소득을 위해 낮에도, 밤에도, 새벽에도 일감을 찾고 생계를 꾸려야 한다. 플랫폼은 24시간 작동하지만, 그 플랫폼 위에서 일하는 이들의 삶은 불안정하다. 양질의 일자리가 없다 보니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구직과 실업은 물론 출산·육아·돌봄 그리고 질병과 건강 등에서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으로부터 배제돼 있다. 개인사업자 형태의 독립계약 노동자 860만명이 처한 상황이다. 이들은 계약의 불투명성과 불공정은 물론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보호받지 못한다.
그렇다고 전혀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의 사회적 보호를 위한 기준선을 만들면 된다. 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보호받아야 할 보편적 기준이 필요하다. 국제노동기구(ILO)나 유럽연합(EU)이 제시한 플랫폼 노동자 보호조치와 노동자 건강 및 안전 그리고 사회안전망을 적용해야 한다. 22대 국회에 발의된 ‘모든 일하는 사람 기본법’ 제정은 그래서 더욱 필요하다. 물론 실효성 있는 정책을 위해서는 객관적 자료와 국가 통계도 필요하다. 노동은 있지만 권리는 없는 이들에게 사회적 시민권을 부여할 때다.
서울시청 외벽에 이른바 ‘스카이’(SKY)로 지칭되는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대입 합격자 수를 크게 내걸어 논란을 빚은 서울시에 대해 청년들이 ‘학력주의 차별상’을 전달했다.
시민단체 투명가방끈은 10일 오후 1시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 해 동안 학벌주의를 조장한 기관 등에 전달하는 ‘대놓고학력학벌차별상’ 수상자로 서울시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 4월 교육플랫폼 사업 ‘서울런’을 홍보하며 시청 외벽에 커다란 현수막을 걸었다. 현수막엔 ‘서울런 대입합격 782명’, ‘서울대 19명, 고려대 12명, 연세대 14명, 의·약학계열 18명, 주요대학 719명’이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적혔다. 현수막뿐 아니라 각종 공무과 홍보자료에도 대학 서열화를 부추기는 ‘최상위권·상위권 대학’, ‘서울 11개 주요 대학’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
서울런은 서울시가 취약계층 청소년에게 무료 온라인 학습 콘텐츠와 1대1 멘토링을 제공하는 교육 플랫폼으로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를 “가장 자랑스러운 약자 동행 정책”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사업이 대입을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기초학력 부진이나 자기주도 학습이 어려운 이용자보다 ‘수능 성적’이라는 성과를 낼 수 있는 이용자들이 주요 지원 대상이 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실제 서울시는 “고3과 N수생을 중심으로 집중반을 운영하면 ‘서울런 대입 성과’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며 일부 이용자를 상대로 ‘서울런 집중지원반’을 운영하기도 했다. 서울시는 지난 4월 이 현수막을 철거했다가 디자인만 바꿔 다시 내걸었다.
이날 투명가방끈은 오 시장의 얼굴을 본뜬 가면을 쓴 활동가에게 상패를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청년들은 “대학 밖 민주주의, 우리는 수능이 만든 세계에 살지 않는다”라고 구호를 외쳤다.
투명가방끈은 “대입 실적 과시는 학벌 사회를 보여주는 지표이자 학생들 간 위계를 만들며 누가 이 사회에서 중요한 대접을 받는지 보여준다”며 “입시를 겪은 청소년들이 어떤 고통을 겪는지는 현수막 뒤편으로 가려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인권위원회가 ‘학벌 차별 문화를 조성하는 행위’라고 규정한 현수막을 매단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만연한 학력, 학벌 차별을 멈추기 위해 노력해야 할 공공기관이 그 책무를 잊고 차별을 조장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인권위는 2015년 “특정 학교 합격을 알리는 펼침막이 학벌 중심의 차별 문화를 조장할 수 있다”며 각 시·도교육청에 지도감독을 요구했었다.
투명가방끈은 대학수학능력시험평가가 있는 지난 7일부터 오는 15일까지 한 주 간 ‘비진학자 가시화 주간’을 운영한다. 투명가방끈은 “대입에 가장 많은 관심이 쏠리는 수능 주에 잊히고 가려지는 대학 비진학자 삶을 드러내고 차별을 차별이라고 부르는 취지로 상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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